룩 스 문 디 세상의 빛 - anglican...설교·제가 마구간입니다!·김근상(바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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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20 서울 중구 정동3번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교회 The Anglican Church of Sts.Mary&Nicholas [전화:02-730-6611/팩스:02-722-1516] 발행: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2013년 1월 6일 | 제 19 호 룩 스 문 디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룩스문디·세상의 빛)는 서울주교좌교회의 사목단이 발행하는 신앙저널입니다. 문서선교 사업의 하나로 매월 1회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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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120 서울 중구 정동3번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교회The Anglican Church of Sts.Mary&Nicholas

    [전화:02-730-6611/팩스:02-722-1516] 발행: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2013년 1월 6일 | 제 19 호

    룩 스 문 디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룩스문디·세상의 빛)는 서울주교좌교회의 사목단이 발행하는 신앙저널입니다.

    문서선교 사업의 하나로 매월 1회 발행합니다.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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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list

    12월 16일(대림3주일)설교·일상 속에서 행실로!·보좌사제 유시경(스테반) 신부

    12월 16일(대림3주일)설교·기쁘게 우리 삶에 모시는 주님·보좌사제 임종호(프란시스) 신부

    12월 17일(대림3주간)

    설교·믿음의 징검다리·협동사제 방홍식(예레미야) 신부

    12월 20일(대림3주간)

    설교·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우리·홍요한(요한) 부제

    12월 24일 (성탄 밤)

    설교·교회는 아기 주님이 태어나신 세상의 마구간·협동사제 이정구(어거스틴) 신부

    12월 25일(성탄일)

    설교·제가 마구간입니다!·김근상(바우로) 주교

    12월 27일 사도 성 요한(복음사가)

    설교·그리스도인의 일상, 순교의 삶·보좌사제 구균하(요나로렌스) 신부

    12월 30일(성탄 1주일)

    설교·더 성숙한 2013년을 맞이하기 위해·주임사제 이경호(베드로) 신부

    1. 사목단 설교

    표지사진 2012.12.24. 성탄밤 축하공연(사목단, 드보라회, 청년회, 어린이교회학교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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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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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속에서 행실로!(스바 3:14-20 / 시편 12:2-6 / 필립 4:4-7 / 루가 3:7-18)

    보좌사제 유시경(스테반) 신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모처럼 포근한 날씨입니다. 추위에 움츠러들어 있던 몸을 좀 펴고, 마음도 좀

    펴시고, 추위를 핑계로 미루었던 일도 하시면 좋겠습니다.

    대림 3주일에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복음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서 세례요한

    의 이야기입니다. 세례요한에 대해서는 루가복음뿐만 아니라 마태, 마르코, 요

    한 등 4복음서 전부에 소개되고 있는데, 가장 자세한 내용을 담은 곳이 루가복

    음입니다.

    오늘 루가복음은 3가지 중요한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다”라는 유대인들의 굳은 믿음에 대해

    세례요한은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 새 시대

    는 유대인의 선민사상 같은 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고 일언지하에 선포하고

    있습니다. 회개의 세례와 죄의 용서를 선포하면서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조

    상 대대로 물려받은 신앙이 아니라 지금 오늘을 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이 더 중요하다고 선언합니다. 신앙이 있다면 그 신앙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

    니다.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루가 3:8) 일상의 삶과 분리된

    신앙, 입으로만 고백하는 신앙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신앙은 자동판매기도 아

    2012년 12월 16일 대림3주일 오후3시 감사성찬례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4

    니고, 교회 명부에 이름이 올라있다는 것이

    구원의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세례자 요한은 “그러면 우리

    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루가 3:10)하고 묻는 군중들에게 아주 구체적인 지침을

    주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지침은, 한 마디로 공존 공생을 위한 나눔, 투명성, 공

    공성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속옷 두벌이면 한 벌을 나누어

    라, 먹을 것도 나누어라, 나 혼자만, 우리 집만 호의호식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게 아니라, 나와 남을 모두 바라보라는 요청입니다. 세리들에게는 정

    한대로만 받으라 했고, 군인들에게는 총이라는 힘으로 사람들을 억압하지 말라

    고 했지요. 협박도 속임수도 쓰지 말고, 착취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요한의 말에서 우리는 2000년 전 세례요한 당시의 이스라엘, 유대지역이 어

    떤 사회적 상황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세푸스라는 사람이

    쓴 ‘유대 고대기’라는 책을 보면, 당시 토비아 가문의 요셉이 시리아와 페니키아

    의 일반세 임대차 경매를 따내는 장면 묘사가 있습니다. 당시는 통치자들이 직

    접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청부업자 세리로 사람들을 고용했습니다. 문제는

    일 년 마다 최고 금액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조세 징수권이 낙찰되는 형식을 취

    했다는 것입니다. 조금 길지만 요세푸스의 글을 인용해서 소개합니다.

    각 도시에서 조세 징수권을 매입하는 날이 되자, 여러 지역에서 온 유력 인사

    들이 입찰을 실시했다. 시리아와 페니키아, 유대 지방과 사마리아에서 걷은 세

    금 합계가 8,000 달란트에 이르자, 요셉은 왕 앞으로 나아가 입찰자들이 낮은 액

    수를 왕에게 제시하기로 담합했다고 비난했다.

    공존 공생을 위한 나눔, 투명성,

    공공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지침은세례요한의 지침은세례요한의 지침은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5

    그는 두 배를 걷어 내겠다고 선언했으며, 이 일을 반대하거나 태만히 하는 사

    람들의 재산은 왕의 재산에 예속시키겠노라고 약속했다. 당시 입찰에서는 조세

    징수권과 함께 이 같은 권한도 매매되었던 것이다. 요셉의 말을 듣고 왕은 기뻐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셉이 나의 세입을 증가시켜 줄 사람 같으니, 나

    는 그에게 세금 징수권을 팔기로 하였노라”하고 말하고는 요셉에게 보증을 서

    줄 사람이 있는가를 물었다.

    (초대 그리스도교의 사회사, 에크하르트 슈테게만, 동연, 193-194쪽)

    이후 이 요셉이라는 사람은 22년 동안 세금을 징수하면서 엄청난 부자가 되

    었다고 합니다. 왕에게 바칠 세금이 100인데, 권한을 사서 120까지 걷어 들이면

    자기 수입이 20이 되고, 130까지 받아들이면 수입이 30이 되니, 세리들은 조세

    권 매매에 필사적이었다고 합니다. 요한은 세리들에게, 이미 정한대로만 받아

    도 사람들이 힘든데, 욕심을 더 부리면 안 된다고 한 것이죠.

    이어서 군인들에게는 ‘봉급’에 만족하라

    고 했습니다. 2천년전 유대 사회에서도 상

    납, 뒷줄 같은 소위 지하경제가 있었던 모양

    입니다. 더군다나 로마의 식민지 지배를 받

    던 상황이니까 치안과 안보를 책임지던 군

    대의 권세는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으리라 보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직업과 일을 통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일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회개를 실천하는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회개라는 말은 ‘메타노이아 metanoia’ 라는 그리스말의 번역입니다. ‘메타

    meta’는, ‘메타피직스=형이상학’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반대 방향, 거꾸로

    불법과 착취의 길을 버리고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서 가라는 의미입

    니다.

    회개는 지금까지 걷던 길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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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뜻합니다. ‘노이아 noia’는 길을 뜻하구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걷던 길, 불법

    과 칙취의 길을 버리고 반대 방향으로, 다른 길로 돌아서서 가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회개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행실을 실제적으로 돌이켜야 그것이 회개이

    고, 나아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세 번째, 세례자 요한은 자기 자리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왔고,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뒤에 오실 분, ‘그리스도’ 예수를 위한 준비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그 점

    을 잘 알고 있었고, 사람들에게도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나를 보지마시고, 내 뒤

    에 오실 분을 보십시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손가락이 가리키고자 하는 것

    을 보십시오. 요한은 이렇게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사람

    입니다.

    이 대림절에 우리의 눈과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일상 가

    운데 회개의 실천, 행실의 변화가 있습니까? 사실 회개한다고 해서 내가 다른 나

    로 교체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내가, 내 몸이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것이기에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받으라고 요청한 것

    인데, 오늘날의 우리는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니 또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

    는 없지요. 우리 안에 세례를 통한 거듭남에 버금가는 삶의 변화와 실천이 있다

    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 전신자 대림절 신앙특강에서 신앙인의 눈으로 다가오는 대통

    령 선거에 임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신앙의 기준

    으로 후보자에 대한 평가와 선택을 하자는 것이지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맞

    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가 한국교회에 드리는 글을 발표했는데, 큰 제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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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을 소개합니다.

    1. 하느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지도자를 기다립니다.

    2.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지도자를 기다립니다.

    3.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지도자를 기다립니다.

    2012년 대림절을 지내면서,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신실한 이들이 지녔던 소

    망을 우리도 지니기를 소망합니다.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새 시간,

    새 시대를 기다리면서 곧 맞이할 성탄일에 오실 주님을 맞이하고자 합니다. “주

    여, 우리에게 오시어 주님의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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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쁘게 우리 삶에 모시는 주님(스바 3:14-20 / 시편 12:2-6 / 필립 4:4-7 / 루가 3:7-18)

    보좌사제 임종호(프란시스) 신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기간입니다. 성탄일은 단순히 예수님의 생신을 축하하

    는 날이 아닙니다. 12월 25일은 예수님이 실제로 나신 날이 아니라 태양신의 축

    제일이었다지요. 교회가 이 날을 성탄일로 삼은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구세주로, 곧 이 어두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음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

    수님을 통하여 이 땅에 “임마누엘” 의 약속, 곧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는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기념하는 것이지요.

    주님의 성탄은 주님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 “임마누엘”의 약속은 이

    미 이천년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약속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아직 완

    성되지 않은 약속입니다. 대림절의 분위기가 좀 애매모호한 것은 이 때문입니

    다. 기쁨에 넘치는 설레임의 시간이기도 하고 심판을 준비하며 우리 삶을 돌아

    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미 시작된 구원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이

    지만 이미 성취된 구원이라는 것! 우리의 믿

    음은 이 역설과 긴장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대림절기도 그렇고 우리 일생도 이러한 긴

    장으로 채워집니다.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

    2012년 12월 16일 대림 3주일 오후 6시 감사성찬례

    이미 시작되었으나 완성되지 않

    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을 준

    비하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구원은구원은구원은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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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을 준비하며 주

    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에 실망하시면 안됩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되었고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쁨으로 주님의 구원을

    기억하며 성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의 구

    원이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도 갖습니다. 우리 자신도 계속 구

    원받은 사람으로서 거룩한 사람으로 계속 변화됩니다. 내가 구원을 통해 변화

    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도 구원받고 변화해야 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것 처럼

    우리들의 자녀, 우리 다음 세대도 구원을 받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물음을 안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 곁에, 우리 안

    에 오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현실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소

    원을 척척 들어주시기를 바랄지도 모릅니다. 이것을 이렇게 이루어주시고 저것

    을 저렇게 해결해 주십사 많은 기도를 바칩니다. 어쩌면 임마누엘 하느님을 맞

    이하는 마음도 “하느님이 가까이 오셨으니 이젠 좀 더 손쉬운 청탁이 가능하겠

    구나” 하는 생각일지 모릅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저 세상에서 우리 영혼

    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돌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일

    도 마침내 십자가에 죽으셔서 그 보혈의 공로로 우리 죄를 씻어주셔서 우리 영

    혼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시기 위함이라고 믿고 감사하는 것이지요.

    교우 여러분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계신지요? 위의 두 가지 기대는 모두 중요

    한 믿음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해를 가지고 과연 예수님께서 어두운 이 세

    상에 참 빛으로 오셨다는 고백과 선포가 충분히 가능할까요?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10

    구원은 이 세상이 변화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우리들의 변화를 통해

    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변화되었는지요? 우리의 변화를 바로

    성경은 “회개”라는 이름으로 요청합니다. “죄의 용서”를 통해서 새로운 존재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오늘 대림3주일에 우리는 세례요한을 통

    해서 임마누엘 하느님, 곧 예수 그리스도 께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기대를 바로 살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세례자 요한의 선포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회개의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하느님을 저 밖에 저멀리 계신 능력

    자로 두려워하며 섬기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곁에 오시는 하느님을 내 맘에, 우리 삶에 기쁘게 모셔들이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내면과 삶을 하느님의 뜻을 따라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자기 자신의 참된 변화를 위해 필요한 아픔과 수고를 회피

    한 채, 그저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통해 밖으로 주어지는 해결책을 구하고, 마음

    에는 가짜 위안을 얻으려 합니다. 그런 신앙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다시 한번 기억하십시다. 성탄을 기다리는 것은 구원을 기다리

    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어 우리 자신과 이 세상을 하

    느님의 뜻에 맞게 변화시켜 가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저 제상에

    우리와 함께 하시어 우리 자신과

    이 세상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변화

    시켜 가신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은 하느님께서구원은 하느님께서구원은 하느님께서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11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고, 초능력으로 어딘가에 이루어지는 환상적인 나라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이 땅위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아니

    바로 우리 자신의 영과 삶 가운데 “함께 하시는 예수님과 몸과 영”을 통해서 그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교회를 이루는 바로 우리들의

    몸입니다. 예수님의 영은 성령을 따라사는 바로 우리들의 영입니다.

    참된 성탄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통해 이미 시

    작하신 그 구원이, 예수님의 몸과 영에 우리가 지체를 이루어 일치됨으로써, 이

    제 우리 교회공동체를 통해 이 세상에 완성되어 가리라는 소망입니다. 물론 그

    것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완결은 아닙니다. 주님의 구원을,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심을 누려야할 많은 세상 사람들이 있고 우리의 자녀들, 다음 세대가 있습니

    다. 세상 사람들과 우리 후손들과 함께 누려야 할 성탄의 소망과 기쁨입니다.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롭게 변화되고 성숙하는 우리의 영

    (靈)과 삶! 이 대림절기에 우리가 함께 설레임으로 품고 키워가는 영원한 소망

    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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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징검다리(창세 49:2, 8-10 / 시편 72:1-5 / 마태 1:1-17)

    협동사제 방홍식(예레미야) 신부푸른나래 공부방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연관성은 혈육을 통해서 이루어진 가족 중심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서 형성되

    어진 믿음의 가족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르면서 같고, 겉으로 연관

    되지 않은 것 같으면서 내적으로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 특별한 관계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의 표현은 너무나

    적절한 비유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스도인 머리를 중심으로 해서 그를 믿는

    모든 이들이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주 밀접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

    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연결고리입니다. 그 연결고리는 신앙에 관한 것이고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신앙은 믿음의 대상을 생각하게 하고, 믿음은 살아가는 사람들

    의 진솔한 마음과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믿음 생활에 대한 진정성과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고백과 함께 우리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아주 촘촘하게 맞물

    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강요되어지거나, 사회적인 법적 구속력을 전혀 갖

    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서로의 신뢰와 신앙적 고백으로 이루어진 자발적 관계

    입니다. 언제든지 자신의 의지가 있으면 그 고리를 풀고 밖으로 나갈 수 도 있습

    니다.

    2012년 12월 17일 대림3주간 월요일 감사성찬례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13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너무나 연약하고 여립니다. 쉽게 깨질 수도 있고, 쉽게 무너질 수도 있

    습니다. 서로를 연결하는 그 중심에 개인의 욕심이나 탐욕이 개입 되면 그 고리

    는 부식되고 깨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우리 믿음의 스승이신 예

    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 분의 가르침을 듣고 배워야 합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돌아보고, 그 돌아보는 가운데서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원

    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신앙인의 삶이 이루어져야 믿음의 연결고리는

    썩지 않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진다는

    것은 내 사람을 만들어, 내 뜻을 전하고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지체로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오늘 복음서는 예수님의 족보에 관한 것

    입니다. 복음서에 왠 족보가 필요할까? 저

    또한 의문을 갖게 됩니다. 굳이 이런 것이

    필요한가. 적어도 요즘 젊은 층들이 이 내

    용을 보면 낙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

    고 신약성서 첫 관문에 이 같은 내용이 있다는 것은 흥미를 끄는데 일단 실패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복음서 중에서 가장 지루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를 주름잡았던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는 것입니다. 그들은 당대에 나름의 역할들을 해온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

    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다윗, 솔로몬, 아모스, 요셉, 마리아도 나와서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내 사람을 만들어 내 뜻을 전하

    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지체로 만들어 가는 과정입

    니다.

    이어진다는 것은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14

    만약,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어 봅시다.’ 라

    고 어떤 과제를 받았다면 어떻게 묵상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참 난감 할 겁니

    다. 저도 이 부분을 묵상하고 그것을 여러분에게 설교를 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

    럽게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신약성서 첫 서두에 이 말씀이 놓여 져 있다는 것은 뭔가 우리에게 하

    고 싶은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대림절 기간 동안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

    진다는 것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첫 의도는 이런 것

    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마태오의 의도 일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

    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 내력과 계통을 전

    하면서 예수님이 다윗의 가문을 통해서 나신 분이라는 것을 설득하기 위함이라

    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만 본다면 지금 우리하고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도 할 수 있

    을 것입니다. 이 점을 알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복음 말씀을 보려는 것 또한 아

    닐 것입니다. 우리의 관점은 신학적인 관점을 넘어서 신앙과 믿음의 관점에서

    이 말씀을 접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다

    가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 중에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와 형태가 있습니다. 그것은

    ‘낳다’라는 단어와 다른 이름들이 나열형식으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마무리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금 혈통의 계보를 접한다기 보다는 믿음의 계보를 보고 있다고 여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15

    겨집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말씀은 수많은

    사람의 존재를 통해서 이어져 내려온 믿음

    의 연결고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

    함부터 이어져오는 믿음이 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낳고 낳아서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져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정점이 바

    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지요.

    이곳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믿음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온 사람들입니다. 그들

    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설명되지 않았지

    만, 그 이름을 부여받은 이들이 신앙과 믿음의 존재가 되어 연결고리가 되어주

    었다는 점입니다. 낳았다는 것은 새로운 존재를 낳았다는 것이고, 그 새로운 존

    재는 또 새로운 존재로 이어질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지요. 신앙

    과 믿음은 그렇게 해서 이어져 오고, 지켜져 왔던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름은 존재의 시작이고, 그 이름들을 통해서 신앙과 믿음은 전해지고 그렇게

    살도록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그 역사적 맥락이 2000년을 거쳐 지금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부여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은 그 역할을 감당할 책임과 의무를

    부여 받았습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 각자는 그리고 교회 공동체는 신앙과 믿음

    의 징검다리이자 연결고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말씀으로 다가 옵

    니다.

    우리는 신앙과 믿음의 자녀를 잉태해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그 맥을 이

    어주는 징검다리이자 연결고리입니다. 다가올 2000년을 이어줄 소중한 믿음의

    그 이름들을 통해 신앙과 믿음이

    전해지고 그렇게 살도록 암시해줍

    니다.

    이름은 존재의 시작이고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16

    백성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쉽게 이것을 잊곤 합니다. 나만 잘 하면 된다는 것

    으로는 이어질 수가 없습니다. 다리가 되고 고리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지

    요. 그것은 하느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이들에게 부여된 은총이자 책임임에 분

    명합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공동체와 우리 각자의 신앙적 자세와 마음을 살펴보아야 할

    때입니다. 특별한 기간에 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살펴보고 돌아보고 건강

    한 다리의 역할과 고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대림

    절, 신앙과 믿음의 시간을 보내는 오늘 우리게 이 복음 말씀이 그렇게 우리 모두

    에게 다가오기를 소망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17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우리(이사 7:10~14 / 시편 24:1~6 / 루가 1:26~38)

    홍요한(요한) 부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제가 여러분께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은총 가운데 살

    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각자의 신앙에 따라, 그리고 믿음에 따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은총 가운데

    살고 있죠. 그리고 우리는 이를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함께 고백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은

    총을 어떻게 함께 고백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해

    보신적이 있으신지요.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하느님의 나라는 나만

    이 선택되어 가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우리 모두가 선택되고

    초대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대림 3주간을 보내면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내려오심을 잘 나타내어 준 사건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죠. 그런데 우리는

    마리아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특별히 그녀는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은 사람

    으로서 예수님을 잉태한 사람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잠시 상황을 바꿔서

    지금 내게 마리아와 같은 상황에 처해진다면 나는 과연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

    히 받아 행복하다 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시켜 오늘 저와 여러분께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십시오. 주께서 그대와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그대는 어쩌면 사람

    2012년 12월 20일 대림 3주간 목요일 감사성찬례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18

    들에 의해 돌아 맞아 죽을 운명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라고 일러주신다면 우리

    는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오늘 루가복음에 기록된 말씀과 제가 방금 성서를 각색해서 드린 이야기가 여

    러분께 조금은 다른 이야기로 다가오실 줄 압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 처녀

    가 아이를 갖는다는 건, 율법을 어긴 중죄인으로서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운

    명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시골 처녀의 인생을 한 번

    에 바꿔 놓은 운명적 사건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런데 하필 하느님께서는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에 살고 있는 시골 처녀에게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시어 처녀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세상을 구원할 아기를 가

    질 운명’에 대해 말씀하셨을까요? 저는 오늘 복음 말씀에 살을 조금 붙여서 이

    이야기를 풀어가 보고자 합니다.

    루가복음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

    브리엘을 시켜 다윗 가문의 요셉이라고 하

    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십니

    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 달리해서 하느님께

    서 천사 가브리엘을 나자렛에 살고 있는 마

    리아에게만 보내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다른 모든 처녀들에게도 보내시어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 부탁하셨다면 어떠했을까 상상해 봅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도 이스라엘의 다른 처녀들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져

    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다 거절했겠죠.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율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처녀가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를 감당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사자로서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지만 이스라엘의 모든 처녀들은 이 소식이 기쁜 소

    식이 아니라 죽음의 소식으로 받아들였겠죠.

    그런데 갈릴래아 지방 시골 처녀 마리아라는 달랐습니다. 분명 그녀도 다른

    처녀가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돌

    에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감

    당해야합니다.

    율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율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율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19

    처녀들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이런 일이 나

    에게 있을 수 있을까? 반문합니다. 그녀 또

    한 율법에 나타난 형벌이 무섭고,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을 겁니다. 언제 돌을 들어

    자신에게 돌팔매질 할지 모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녀는 숙명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이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짧고 간결한 고백이야 말로 성탄을 준비하

    고 맞이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메시지가 아닐까요.

    분명 우리 모두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라 고백하고 주님을 따라 살겠노라 다짐

    합니다. 한데 세상을 살아다보면 이를 지키지 못할 때가 많이 있죠. 주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세상의 이치를 우선시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이러한 말로 우리 마음을 위안시키죠.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한데 이러한 삶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 살고 있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삶이 아닐까요. 아무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충만한 은총을 내려주셨다 한들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신 마리아의 고백처럼 하느님의 뜻을 몸소 받아들일 수

    없다면, 주님의 은총은 우리가 누릴 수 없는 그림의 떡에 불과합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고백은 우리들의 ‘앎’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

    앙 고백은 우리의 목숨을 주님께 내어드리겠다는 ‘결단’에서 시작되어야 합니

    다. 돌에 맞아 죽을 운명이 내 앞에 놓여 있더라도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이죠. 혹 우리의 마음 한편에는 신앙이 깊은 마리아였기에

    성모로 선택되고 이러한 일들이 가능했지 않았나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마리아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아

    주 평범한 시골 처녀였고,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요셉과 결혼하여 고향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기를 꿈꿨던 보통사람

    이었을지 모릅니다. 한데 그런 그녀가 다른 이들과 달랐던 점은 그녀는 자신의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주 평

    범한 시골 처녀였고,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마리아는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20

    삶 가운데 하느님의 은총이 언제나 충만하다는 사실을 느끼며 살아갔다는 점이

    겠죠.

    여러분, 오늘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신앙을 통해 우리가 성탄을 어떻게 맞이

    해야하는지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그녀와 같이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으로

    서 하느님의 은총을 향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은

    총은 선택된 그 누군가에게만 내려지는 편협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

    게 내려진 하느님의 사랑이시기에 우리는 그 은혜에 감사할 수 있고, 그 감사함

    에 우리의 전부를 내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

    없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라고 말씀하시며, 세상이 아닌 하느님을 선택하라 말

    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선택이 꺼려지십니까? 세상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까 걱정되십니까?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

    은 사람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어갈 하느님의 사람들이며, 이곳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들

    과 함께 체험할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겠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결단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됨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대림 절기에 우리의 고백이, 우리의 신앙이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쓰이길 간절

    히 소망합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이 날이 주님을 위해 올바로 쓰이

    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21

    교회는 아기 주님이 태어나신 세상의 마구간(이사 9:1-6 / 시편 96 / 디도 2:11-14 / 루가 2:1-14)

    협동사제 이정구(어거스틴) 신부

    †하늘 높은 곳에서 영광 받으시는 하느님과, 이제 태어나신 이 땅에 평화의 아

    기 그리스도와 그분의 성스러우신 영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가브리엘 천사와 즈가리아로 부터 이미 전해 들었듯이 우리는 지금 막 탄생하

    신 아기예수님을 방문하고 그 분을 찬미하는 감사성찬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앞

    으로 모진 고초를 겪으시고 돌아가실 예고까지 받으신 아기예수님의 탄생을 기뻐

    해야 하는것인지 아니면 애통해야 하는 것인지 조차 가늠을 하지 못할 만큼 우리는

    우매합니다.

    그러나 우리와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해 속죄양으로 태어나시는 이 분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이 순간 주님으로 부터 무한한 축복을 받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조금 전 우리 한명 한 명 모두는 한 밤 중에 양떼를 지키는 목동으로 마구간을 방

    문했습니다. 어떤 분은 마태오 복음 2장에 담겨있는 동방박사로서 마구간을 방문

    하여 경배를 드린 분도 계셨고 베들레헴의 별을 보고 찾아 온 목동으로서 마구간을

    방문한 분도 계십니다.

    조금 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

    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

    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 분을 알아보는 표이다.’ 라고 낭독한 부제님의 음성을 통해

    우리는 천사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마구간을 방문하여 아기예수 탄생의

    증인이 되었고 그 증인된 표로서 아기예수님 탄생을 기뻐하며 찬양을 드리는 감사

    성찬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012년 12월 24일 성탄 밤 감사성찬례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22

    가난한 목자들이 보았던 베들레헴의 별은 알퐁스 도테의 단편에 등장하는 별과

    도 다르고, 허클베리가 노예 짐과 한 밤 중에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건너며 바

    라보았던 밤하늘에 총총 박힌 별과 다른 별입니다. 목자들이 본 별은 구세주의 표

    징이었습니다.

    양떼를 지키는 가난한 목자들이 천사의 인도에 따라 아기예수를 방문한 것과 다

    르게 가장 신분이 높은 동방의 왕, 박사들이 마구간에 찾아가 아기예수를 예방한

    것은 대단히 정치적인 행보였습니다. 마태오 2:1-12절에 보면 예수께서 헤롯왕 때

    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나셨는데 그 때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

    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에

    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헤롯왕이 당황한 것은 물론,

    예루살렘이 온통 술렁거렸다고 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목자들처럼 아기예수를 구세주로서 경배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유대인 왕의 출현으로 보았고, 신하로서 인사

    를 드린 것입니다. 그 때에 헤롯이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정

    확히 알아보고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

    서 “가서 그 아기를 잘 찾아보시오. 나도 가서

    경배할 터이니 찾거든 알려주시오.” 하고 부

    탁을 합니다. 결국 동방박사들의 행보로 인해

    당시 어린이들 대부분이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고 맙니다.

    고요한 밤 다윗의 고을 베들레헴에 나타난 샛별은 목자에겐 구세주의 징표였지

    만, 동방박사들이 바라본 별은 그리스 로마의 문화와 그들의 통치에서 벗어나 유대

    인 왕이 통치하는 정치적인 유대 왕 탄생의 표지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선물은

    빈손으로 달려온 목자들과 다르게 황금과 유약과 몰약이었고, 이것은 당시로서는

    샛별은 목자들에겐 구세주의 징표

    이고, 동방박사들에게는 로마의 지배

    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대 왕 탄생의

    표지였습니다.

    베들레헴에 나타난베들레헴에 나타난베들레헴에 나타난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23

    상상할 수 없이 큰 재물이었습니다.

    성서는 공교롭게도 이렇게 구세주를 바라보는 표징을 두 가지로 알려주고 있습

    니다. 어릴 때 교회제단 위에서 성탄 극을 할 때는 언제나 목자와 동방박사는 차례

    로 등장했고, 분장을 하고 마구간 앞에서 아기예수께 경배를 한 기억은 세월이 한

    참 흐른 지금에 와서도 한 밤에 내리는 눈송이를 맞는 것 같은 설레는 추억입니다.

    일제 강점 하에, 그리고 독재정권 하에서 동방박사의 별은 큰 의미가 있었습니

    다. 그러나 이 의미만 지속 강조되었다면 교회는 세속적인 정치의 각축장으로 변질

    되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지금은 무

    조건 갈등과 분열을 막고 나라가 건강해지고 국민모두가 다 잘 살 수 있는 선정을

    펼쳐주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기주님이 태어나셨기에 우리는 도처에서 어떤 처지에 있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병든 자, 갇힌 자, 가난한 자, 부요한 자 모두가 바로 우리 자신이며 우리

    국민이며 우리 이웃이며 다 같은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천년 전 가난하고 순박

    했던 목자들이 증언한 신비한 아기예수탄생 사건을 지금 우리는 성탄 감사성찬례

    를 통해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영광이며 이 땅에는 평화가 선포되

    는 소망이 지금 이 감사성찬례 안에 들어 있습니다.

    성탄절에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색은 우리 성당 안에도 있습니다. 이 성당에 빨

    간 초를 장식한 빨간 리본은 초록색 이었으면 좋았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성당

    기둥 주두에는 초록과 빨강의 색이 줄과 상록수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멕시코의 가난한 어린이가 주일학교 성극 연습을 할 때입니다. 무

    대 앞에 주님께 드릴 작은 선물을 준비해야 했는데 이 어린이는 너무 가난해서 드

    릴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가련한 어린이는 밖에 나가 무릎을 꿇고 울면서 ‘주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24

    님 저는 주님께 드릴 것이 정말 눈꼽만한 것

    도 없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 가난한 목자 같은 어린이가

    절망에 눈물로 기도하고 무릎을 끌어 올려 일

    어선 순간, 그 기도한 자리에 기적같이 작은

    식물하나가 솟아났습니다. 어린이는 이것을

    보고 목자들이 징표를 보고 놀랐듯이 놀라서 이 식물을 들고 성탄극을 준비하는 무

    대 앞에 봉헌했습니다. 이것이 성탄절의 식물로 알려진 포엔시티아입니다.

    초록은 상록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 영생을 의미하며, 빨강은

    주님의 대속하신 보혈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흘리신 대속의 보혈로 영원

    히 죽지 않을 구원의 은총의 크나큰 선물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아기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이유이며, 성탄에 초록과 빨간 색깔로 장식하는 것

    입니다.

    교회는 아기 주님이 태어나신 세상의 마구간입니다. 이미 도시에서의 고요한 밤

    은 이미 우리의 눈과 귀에서 사라졌지만 그래도 이 마구간 안은 아늑하고 신비하며

    고요합니다. 도시의 삭막한 밤하늘에 총총 떠있던 별들도 사라진지 오랩니다. 별

    대신에 네온이 불야성을 이루고 술과 매연의 악취가 공중에 떠돌아다니지만, 이 마

    구간 안에는 아기 주님께 드린 유향의 향기로 가득합니다.

    도시의 뒤 골목의 적막한 밤은 무섭지만 마구간의 밤은 고요하고 성스럽습니다.

    도시의 밤은 유혹의 유령들이 넘실대지만, 이 마구간 안에는 오직 성령만이 충만합

    니다. 어리신 아기예수가 눌 자리 없을 때 주님은 그 분께 마구간을 주셨고, 세상이

    지쳐있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습니다. 이제 이 시대가 요구하고 바라는

    교회 상은 동방박사들의 마구간이기 보다는 가진 것 없는 목자들이 경배했던 마구

    간입니다.

    이제 태어나신 아기주님은 샤갈의 색 유리창을 통해 영롱하게 떠도는 초록과 빨

    상록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영원

    히 변치 않는 영생을 의미하며, 빨

    강은 주님의 대속하신 보혈을 의미

    합니다.

    초록은초록은초록은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25

    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베들레헴의 목자가 되어 그

    분 탄생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모든 이에게 골고루 비추는 빛 중에서 초록과 빨강

    의 빛의 파장은 가난한자 눌린 자 부요한자 모두에게 진리의 빛으로, 영생과 구원

    의 빛으로 이 한 밤에 이 세상의 마구간 안에서 우리 모두를 감싸줍니다. 베들레헴

    의 별 모양과 닮은 초록과 붉은 포엔시티아의 잎을 주님의 제단에 봉헌했던 가진

    것 없는 어린이의 마음을 성탄 밤에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신비하고 영롱한 주님의

    빛이 세상 밖 어두운 구석구석까지 비추시어 모두에게 큰 은총으로 내리시길 간구

    합니다.

    †탄생하신 아기 주님을 기뻐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

    니다.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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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마구간입니다!(미가 5:2-5 / 히브 10:5-10 / 마리아 송가 / 루가 1:39-45)

    김근상(바우로) 주교

    앉으시기 전에 먼저 여러분들의 이웃과 성탄 인사부터 하시지요.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 축하합니다! 쑥스럽지 않으면 옆에 분을 안아 주시기도 하시구요, 허깅이 주는

    의미가 사실 남다르기도 하답니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것은 조금 더 가까이 이웃

    을 만나는 방법이기도 하답니다. 다시 한 번 뜨겁게 “ 메리 크리스마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이제 앉으시지요.

    별로 경험해 보지 못한 혹한에 몸도 마음도 많이 오그라져 있을 텐데도 뜨거운 신앙

    으로 아침을 가르고 성전에 도착한 여러분 모두에게 특히 어제도 오시고 오늘도 오신

    교우님들에게 하느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먼저 축원합니다,

    최근 신문매체를 통해서 조사한 것을 보면 성탄하면 아기 예수보다 싼타 할아버지

    를 기억하는 사람이 4배가 된답니다. 하지만 기독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

    장 큰 이미지는 크리스마스트리이고 두 번째가 마구간이랍니다. 성공회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마구간을 성탄이 가지는 가장 대표적 이미지로 하여 대림절을 시작하면 바

    로 마구간 장식을 성당 뒤편에 만들어 놓게 됩니다. 저희도 저렇게 마구간을 만들어

    놓았고 어제 저녁에 축복식을 한 다음 예수님을 봉헌하고, 기도하고 헌물을 바치며,

    예수님 탄생을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마구간의 아기 예수 탄생

    은 그렇게 기쁜 추억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이 기쁜 일이 맞습

    니까? 아니지요. 슬픈 일입니다 무척 슬픈 일입니다. 그 분은 환영받지 못하며 이 세

    2012년 12월 25일 성탄일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27

    상에 오셨습니다. 마리아의 잉태 소식도 겨우

    사촌누이 엘리사벳에게 털어 놓을 수밖에 없

    을 정도로 참담한 상태에서 잉태를 한 것입니

    다. 아직 손도 잡아 보지 못한 약혼자에게 조차

    도 의심을 받으며 낳아야 하는 그런 지경입니

    다. 지금 형편으로는 마구간도 감지덕지입니다. 그 분은 그렇게 오셨습니다. 오늘 우

    리가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도 마구간은 마구간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금장식으로

    마구간을 꾸며도 예수님 태어나신 곳은 천한, 냄새나는 마구간입니다. 그래도 그 분

    을 설레임으로 기다리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구유로 오시는 예수님을 코를 막

    고라도 기다리실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신앙이 아름답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으로는 절대로 마구간 구유로 오시는 분

    을 설레임으로 기다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피하고 싶은 일이며, 감추고 싶은 일입니

    다. 해서 제발 두 번 다시 우리 예수님은 말구유로는 오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

    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왜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하찮은 존재로, 마구간의 구유로 오실 수밖에 없

    었는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솔직히 말해서 저나 여러분이나 예수님께서 또 다시

    마구간으로 오신다면 우리 역시 쳐다보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100%입니다. 예수님께

    서 근사한 전용 비행기를 타고 국제공항으로 오신다면 혹시 잘 차려 입고 공항에 나

    가실 수는 있어도 어디 철원이나 양구근처 깊은 산 이름 모를 촌에서 듣도 보도 못한

    어느 여인이 처녀인 몸으로 예수님이 태어난다고 꿈에, 혹은 천사가, 아니면 가까운

    친구가, 가족이 말해 준다 해도 코웃음치고 등 돌릴 확률 100%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 보면 하느님께서는 이 방법 밖에는 없으셨겠다는 생

    각이 듭니다. 사람의 먹이도 아닌 망아지의 먹이통이라 함은 모든 사람들의 먹이 찌

    꺼기와도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태어 나셔야 이 땅에 모든 사람보다 천하게

    태어나실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

    셨으니 그를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으리라 ! 요한복음 3장 16절의 가르침대로 하느님

    금장식으로 마구간을 꾸며도 예

    수님 태어나신 곳은 천한, 냄새나는

    마구간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28

    의 관심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행복하면 못할 일이 없으신 우

    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어머니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의 사랑을 가득히 받

    는 자녀들입니다. 그 분보다 작은 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 아닙니까? 자기 자식

    을 위해 몸 바치는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 세상에 짐승의 먹이로 오신 모습이,

    그런 모습으로 어떤 못된 사람도, 동물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먹이로 사시겠다는 것

    이 바로 마구간에서 태어나는 예수님의 존재 모습인 것입니다. 사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이 성탄이 누구에게나 기쁘고, 이 성탄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축하

    하는 최고의 절기가 되는 것입니다. 맨날 천대받고 사람취급도 못 받았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네 종이며, 네 먹이이며, 네 피난처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땅에 사람을 너무 사랑하셔서 당신 스스로 세상에

    한 사람으로, 한 아기로 숨을 쉬시기 시작했다는 이 엄청난 소식은 정말 기뻐 뛸 일이

    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의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냥 상식

    으로도 이해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마리아의 임신은 누구보다도 약혼자 요셉에

    게는 큰 괴로움이었을 것입니다. 손 한번 만진

    적이 없는데 ... 그러나 요셉이 손 한번 잡아본 적이 없다고 강변 하더라도 누가 요셉

    의 말을 믿겠습니까? 파혼을 해야겠다고 생각도 해 봅니다만 약혼자를 임신시키고

    도망간 나쁜 놈! 이라는 비난을 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부정한 여자와 내가

    모르는 아이를 내 자식으로 생각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조용히 파혼하기로 마

    음을 먹게 됩니다. 그 날 밤 요셉을 꿈을 꾸지요.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에 의한 것이

    니 두려워 말라”는 천사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과연 이 꿈 하나로 마리아를 믿게 되

    었을까요? 여러분은 꿈으로 여러분의 미래를 맡기실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생각하

    기에는 꿈 때문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요셉은 워낙 착한 사람이어서 스스로가 조

    동물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먹이

    로 사시겠다는 것이 바로 마구간에

    서 태어나시는 예수님 존재의 의미

    입니다.

    어떤 못된 사람도어떤 못된 사람도어떤 못된 사람도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29

    금 견디어 내면, 내가 조금 참고 살면 모든 사람들이 크게 실망하지 않고 어렵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는 생각 없는 덜떨어진 사람으로 취

    급받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아내 마리아도 태어날 아기도 동네의 많은 친척들도

    이웃들도 슬픈 일 없이 축하해 주며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셉

    의 생각대로 아무도 요셉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먼 훗날 그

    괴로움을 홀로 견디어 낸 축복으로 요셉은 메시아, 구세주의 양아버지가 되는 은총을

    얻게 되었습니다. 결과가 이렇듯 은총이어서 그렇지 요셉은 생애 내내 얼마나 힘드셨

    을까 하고 짐작해 봅니다. 족히 30년이 걸린 신앙의 여정인 셈입니다.

    마리아의 고뇌만큼이나 요셉의 아픔도 이 성탄절에 기억되어야 합니다. 바로 여러

    분들이 만들어 내야 하는 이 시대의 메시아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너무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의혹과 불편함을 참고

    잘 견디어 내는 일, 순종과 긍정으로 내일을 기다리는 일, 적어도 아기 예수님을 모시

    기 시작했으니 그 분이 힘들게 사신 30년은 기다려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생각해

    보니 좀 그러네요. 저도 회개합니다. 아비노릇을 잘해낸 요셉도 아무소리 하지 않고

    잘만 사셨구만 웬 지지리도 못난 사람들은 남의 가정사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모르

    겠습니다. 여러분도 남의 사생활에 그렇게 관심보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탄절에 자주 부르는 루돌프 사슴코라는 캐롤을 아시지요? 이 캐롤은 로버트 메

    이라는 청년이 만든 동화의 한 부분입니다. 이 친구는 동화작가가 꿈이었지만 공부를

    한 적도 없고, 멋있게 생기지도 않았으며 돈도 물론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아

    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글을 신문사나 출판사에 보냈지만 늘 퇴

    자를 받았지요. 설상가상으로 부인도 중병으로 누어 병상에 5년이나 있고 당시 1938

    년에는 미국의 대공황으로 끼니를 잊기가 쉽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 때 병상을 지키

    면서 만든 것이 이 란 동화였고, 이를 몽고메리 워드라는 당시 최고

    의 출판사가 이 글을 사서 곡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신문에서 본 병상의 부인

    은 “이 루돌프 사슴코가 당신이야기지요?” 하며 마지막으로 메이에게 격려를 주고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30

    --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 그래요 못생긴 사슴 한 마리가 놀림을 당했

    지만 오히려 그 못난 사슴이 싼타 할아버지에 눈에 들어 남에게 선물을 전달해 주는

    썰매를 끌게 되었다는... 과연 우리 교회는 루돌프가 없나요? 좀 특별한 사람 있지요?

    그래도 여러분들은 점잖은 축에 사시는 분들

    이어서 내 놓고 손가락질은 못해도 “저 사람 좀

    이상하지 않냐? 얼마나 되었다고 저렇게 설쳐

    대냐? 공부를 많이 했으면 너무 많이 해서 , 공

    부를 못했으면 못해서, 돈이 많으면 돈이 많아

    서, 가난하면 가난해서 몰래 손가락질을 받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루돌프입니다. 그렇게 생

    각하면 여러분들 루돌프가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네요. 다행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싼타 할아버지의 선물 배달꾼으로 뽑혔습니다. 어떤 학자가 재미있는 인간 성장론을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싼타를 믿는 사람, 두 번째 단계는 싼타를 안 믿는 사람, 세 번

    째 단계는 싼타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랍니다. 여러분은 누구?

    그렇습니다! 교우 여러분! 성탄은 희망을 보는 날입니다. 마리아의 고뇌와 당혹감,

    요셉의 황당함과 괴로움, 코가 빨간 루돌프같이 많은 사람들의 놀림과 조소 중에도

    하느님께서는 그 안에서 보물을 일궈 내신다는 것이지요. 마구간에서, 구유에서, 많

    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서, 그리고 어이없는 등 돌림으로부터, 어떤 가능성도 없는

    절망 한 복판에서 여러분을 기꺼이 만나시겠다는, 여러분들을 뜨겁게 포옹하시겠다

    는 약속입니다.

    주님 안에서 내 형제 자매이신 우리 교우 여러분 !

    지난 날 많이 힘드셨지요? 2012년 많이 힘드셨지요? 이젠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분이 오시면 여러분들이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고 힘 빠진 팔을 잡으시며, 흔들거

    리는 무릎을 세우셔서 새 날을 맞이하게 하십니다. 바로 여러분이 마구간이라는 사실

    을, 여러분이 루돌프라는 사실을 우리 하느님께서 잘 알고 계시기에 바로 여러분 가

    마리아의 고뇌와 당혹감, 요셉의

    황당함과 괴로움, 루돌프의 놀림과

    조소 중에도 하느님께서 그 안에 보

    물을 일궈 내신다는 것입니다.

    성탄은 희망입니다성탄은 희망입니다성탄은 희망입니다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31

    슴 한 복판에 곧 태어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지키시고자하는 가장 소중한 그리고 특별한 최고의 선물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바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실 마구간 구유임을 잊지 마십시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32

    그리스도인의 일상, 순교의 삶(출애 33:7-11 / 시편 117 / 1요한 1:1-9 / 요한 21:19-25)

    보좌사제 구균하(요나로렌스) 신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늘은 사도 성 요한의 축일입니다. 열 두 사도 중에 가장 나이가 어렸고, 예수님께로부

    터 사랑받던 제자, 애제자라고 불리던 사도입니다. 저도 신학교때 애제자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사랑받는 제자가 아니라 애 먹이는 제자라고 해서 애제자라고 불렸습니다.

    다른 사도들에 비해 나이가 어렸던 사도 요한은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순교하지 않고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래서인지 초대교회의 구성원들은 사도 요한을 두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란 말을 하기도 했다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21장 19절 이하에 나오는 대목은 요한에 관한 초대교회 사람들의 호기심

    의 답과 같은 부분입니다. 실제 요한복음은 기원후 90년경에서 늦게는 기원후 150년경에

    기록되었다고 봅니다. 사도 요한의 죽음이 있은 후에도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

    은 사실에 많은 이들이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 공동체는 요한복음에서 예수

    님의 말씀을 빌려 예수님의 재림과 요한의 생존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전하는 것 같습

    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사도 성 요한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좋은 표

    양을 보여 줍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죽음의 위험과 바

    로 연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복음선포와 신앙의 자유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는 곳도 많습니다만, 적어도 2012년 대한민국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라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습니다. 목숨을 내어 놓는 순교를 통한 신앙의 증거가

    어떠한 형태의 신앙고백보다 강렬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순교로 많은 이들이 그리스

    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도록 이끌었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

    2012년 12월 27일 사도 성 요한(복음사가) 축일 감사성찬례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33

    하는 이들보다 죽음으로 하느님께 충성하는 이

    들을 바라보는 사도 성 요한의 심정은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의

    무거움, 나이가 들면서 점점 하느님의 뜻을 따르

    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신념을 따르는 스스로를

    발견하면서 사도 요한은 현실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겪는 무수한 어려움과 도전 앞에서

    조용하고 묵묵히 순교의 삶을 살았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요청되는 삶은 지금 당장 그리

    스도교를 박해하는 오지에 선교사로 가서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것 역시 소중한 삶이지만, 우리에게 요청되는 삶은 매 순간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께

    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이 다하기까지 한평생 한결같은 삶을 살아

    가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단 한번 죽음을 맞이하는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보다 더 힘

    겨울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뜻과 우리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나에게서 죽고, 하느

    님에게서 부활하는 순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백발이 성성한 사도 성 요한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주름진 얼굴과 굽은 등에서 그가

    살아온 삶의 무게를 가늠해 봅니다. 그리고 매순간 순교의 삶을 살면서 하느님께서 자신

    에게 원하신 바를 성실히 실천해온 고집스러움도 봅니다. 우리의 삶을 봅시다. 2000년 전

    과 비할 수 없으리만큼 복잡하고 힘든 삶이 우리의 삶입니다. 너무나 많은 가치들이 서로

    앞다투어 우열을 가립니다. 고정 불변의 가치보다 사안에 따라 변화하는 가치의 판단 기

    준에 알게 모르게 하느님과 이웃에게 죄를 짓게 된지도 모릅니다. 그 속에서 하느님께서

    는 너무나 약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아무 힘도 없는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오

    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겠습니다. 어딘가

    에서 지금도 작고 힘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그분을 찾아야겠습니다. 오늘 우

    리가 기억하는 사도 성 요한처럼 삶의 순간순간을 작고 낮은 자 되신 하느님을 찾는 성실

    함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나가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서 더 커지실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나가야겠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

    는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 선포의 사명을 수행하는 길임을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이 성찬

    례를 봉헌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매 순간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

    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

    입니다.

    우리에게 요청되는 삶은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34

    더 성숙한 2013년을 맞이하기 위해(사무엘상 2:18-20, 26 / 골로사이서 3:12-17 / 루가복음 2:41-52)

    주임사제 이경호(베드로) 신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다시 한번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며 여러분의 삶과 가정 위에 주님의 크신 은

    총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2012년 마지막 주일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교우

    여러분들이 하느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헌신 봉사하신 모든 것들에 대해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부족한 저를 비롯하여 사목단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베

    풀어 주신 것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한 해가 정말 빨리 지나가는군요. 지난 한 해를 다시 뒤돌아봅니다. 잘 살았는지...

    하느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은 없었는지... 삶의 방향과 목표는 바르게 정하고 걸어왔

    는지... 교우 여러분은 어떠셨는지요?

    오스 슈이치라는 일본의 호스피스 전문의가 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말기 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그의 임무였지요. 그는 약 천여 명의 말기 암환자의

    임종을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환자들은 죽음이 임박할 때면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 선생님, 선생님도 후회를 한 적이 있나요? 선생님은 후회 같은 거 안 하시죠?”

    그러면 그는 “아니요, 저도 후회합니다. 저도 가슴을 치며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면 죽어가는 환자들은 “저는요……” 라고 하면서 자신이 살아오면서 후회되는

    2012년 12월 30일 성탄 1주일 감사성찬례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35

    일들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고, 그들에게

    서 들은 것들을 정리하여 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목록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면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좀 더 많이 ‘고맙다’고 말할 걸…”

    “기왕 이렇게 될 거였으면 사람들을 좀 더 친절하게 대할 걸…”

    “그때 좀 참을 걸…”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죽도록 일만하고 살았는데…바보같이…”

    “돈 때문이 아니라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했더라면…”

    “아, 나에게도 꿈이 있었더라면…”

    “가고 싶었던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이럴 줄 알았더라면 돈보다 건강에 더 신경을 썼을텐데…”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신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배울 걸…”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아버지나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때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발

    을 씻겨 드릴 걸…”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용서를 빌 걸 …”

    2012년 364일을 살면서 교우 여러분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지난 일 년의 삶 가운데 후회가 되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다섯 개만 정리

    하십시오.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그 다섯 가지의 후회를 자랑스러운 일로 바꾸는

    계획을 세워보십시오. 그러면 2013년이 정말 새로운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골로사이서 서신에는 세 번이나 반복해서 감사하라는 말이 나옵

    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

    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하십시오.”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36

    감사하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 같지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불평을 일삼던 ‘불평나라’의 한 젊은이가 ‘감

    사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답니다. 동네 사람들과 가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떠

    나는 그 젊은이를 향해서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외쳤습니다.

    “이번에는 제발 감사를 꼭 배워서 우리에게도 감사를 가르쳐 주세요”

    이 젊은이는 감사나라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여 ‘감사박사학위’를 따게 되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감사에 대해서 배울 것이 없을 정도가 되었고 그는 감사박사학위증을

    가지고 드디어 자기 나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공항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 젊은이

    를 환영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정말로 감사를 잘 배워왔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단상에 오른 그 젊은이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에이 정말 지겨워요. 거기에는 감사밖에 배울 것이 없어요. 전 감사만 징그럽게 배

    우다 왔습니다.”

    또 한편 감사나라의 한 젊은이가 불평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어떻게든 불평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풍습, 역사 등을 배워서 그들과 더 화목해 질

    수 있도록 여러 면으로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젊은이도 열심히 공부해서 아주 단 기간에 ‘불평학 박사학위’를 땄습니다. 그도

    드디어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과 사람들은 불평나라에 대해 무엇을 배워왔는

    지 궁금해 했습니다. 단상에 오른 그 젊은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가르쳐 준 그 나라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가르쳐 준

    그 나라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게 감사할 줄 아는 게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37

    여러분의 자녀들이 정말 잘 되기를 바란다면 가장 먼저 감사를 가르치십시오. 자녀

    들이 여러분의 사랑과 보살핌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면 자녀 교육은 성공한 것입니다.

    공부를 좀 못해도 괜찮습니다. 재능이 떨어져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집 아이

    보다 좀 부족한 가운데 키워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아주 작은 것에도 고

    맙고 감사하는 마음을 심어주었다면 여러분의 교육을 아주 잘 한 것입니다. 이와 마

    찬가지로 우리들 역시 범사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고 예배

    를 드린다면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바른 믿음의 길을 걷고 있다 하겠습니다.

    오늘성서말씀의 주제는 신앙 안에서의 성장입니다.

    “어린 사무엘은 야훼와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1사무 2:26)

    / “예수는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게 되었

    다.”(루가 2:52)

    사무엘이 야훼 하느님과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나듯이 예수님도 그렇게

    몸과 지혜가 성장하셨습니다. 오늘의 복음은

    12살의 어린 예수가 육적으로는 요셉과 마리

    아의 아들이지만 영으로는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임을 깨달았다는 것을 전하고 있습

    니다. 이 이야기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사무엘이나 예수님이 얼마나 신통한 어린이였

    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예수님이

    어떻게 성장하고 자라났는지... 그리고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혈육의 관계

    에만 머물지 않고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산다는 성숙한 인간의 과정을 전하

    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몸과 지혜가 함께 건강하고 균형 있게 자라나는 것은 매우 중요

    한 일입니다. 몸은 다 자라 성인처럼 되었는데 지혜가 부족하거나, 지혜는 아주 뛰어

    난데 몸은 허약하다면 온전한 성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 기도하고 예배드린

    다면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바른 믿

    음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범사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 룩스문디 서울주교좌교회 사목단 저널 제19호

    38

    그러나 우리의 성장은 여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의 몸은 20대 중반이 되면

    더 이상 성장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을 먹고, 아무리 좋은 음식과 운동을

    열심히 해도 좀 늦춰줄 뿐이지 몸은 점점 노화의 과정을 밟게 되어 있습니다. 잘못 관

    리하면 체중만 불려서 오히려 건강에 더 해롭습니다. 이제 이 때부터의 성장은 몸이

    아니라 내면의 성장과 성숙으로 나아가야 하고, 우리 신앙인들은 영적인 성장과 성숙

    으로 향해야 합니다. 이런 내면과 영적인 성장과 성숙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

    는 하느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더 성숙하고 온

    전한 인간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내면의 성장과 영적인 성장에서 중요

    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이고, 이 물

    음의 다른 질문은 “나는 누구와 관계를 맺고 사

    느냐?”의 깨달음입니다. 어린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를 하느님과 아들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하느님과 관계 속에 있다고 여

    기며 사셨습니다. 이런 자의식을 가지고 살았기에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더불어

    하느님 안에서 당신의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바로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아들과 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스런 아들과 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

    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맛보는 사람들이

    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골로사이서 서신은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

    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아주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

    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된 것입

    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여러

    아들과 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

    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맛

    보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스런하느님의 사랑스런하느님의 사랑스런

  •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

    39

    분 안에 살아 있기를 빕니다.” (골로 3:14-16)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어 주님의 몸과 하나가 된 사람의 삶, 그리스도의

    평화가 그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사람의 삶,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

    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삶... 이런 사람의 삶은 한 마디로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이해와 지

    지 격려, 인정, 배려를 받으며 살아가는 삶이지요. 이런 삶은 한 마디로 사랑의 하느님

    과의 깊고 친밀한 사귐, 코이노니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골로사이서는 우리가 하느님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라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천해야 하는 자비를 다음과 같이 풀어서 설명하고 있

    습니다.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

    고...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사랑을 실천

    해야 합니다...항상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삶이 하느님의 생명을 마음에 품고 사는 하느님의 자녀의 삶이라는 것이

    지요.

    오늘 우리는 또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이 예배를 드립니다. 뒤돌아

    보면 고통스러웠던 일, 가슴 아팠던 일, 후회스런 일, 부끄러운 일이 많았던 한 해였습

    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은혜로운 일, 고맙고 감사한 일도 많았습니다. 하느

    님의 사랑과 은혜가 참으로 컸던 한해였습니다.

    이제 2012년이란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겠지만 그 시간 속에 맺었던 관계는 앞을 우

    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의 신앙을 살찌우는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오늘과 내일 남은

    시간동안 2012년을 잘 마무리 하시고, 더 큰 기대와 소망 가운데 새로운 2013년을 맞

    이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 이번 2013년 1월 6일자 발행 사목단 저널 룩스문디(통권19호)는 서울주교좌교회의

    이명진(루가), 김의리(율리아나) 교우와 익명의 후원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문서 선교와 교

    육을 위한 귀한 봉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복음전파와 교회쇄신과 신앙성숙을 위한 문서선교사업에 뜻있는 교우들께서는 기도와

    발행비용 봉헌으로 동참해 주시길 기다립니다.

    후원금 봉헌연락: 유시경(스테반) 신부

    010-4514-5087 / [email protected]

    신한은행: 110-297-784647(유시경)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8:12)